아무것도 모르는 시간을 보냈다.


늦은 시간 글을 쓴다.

오늘은 예비군 훈련이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소를 옮기지 않아서 예비군 훈련을 대구에서 받았었는데, 올해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주소를 옮겼기 때문에 새로운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메일도 확인하고 인터넷으로 지도도 살펴봤으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밤 늦게까지 인터넷을 했었다. 피곤해질 때까지. 물론 늦잠을 잘 것 같았지만 늘 이렇게 자고도 회사도 늦지 않았으니까.. 노래를 들으면서 잠에 들었다.

일어났다. 7시에. 조금 더 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누웠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몸이 피곤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누웠던 것 같다. 난 일어난 뒤 다시 자는 습관은 없으니까 말이다.

결국 일어났는데 8시. 이건 지각이다. 겨우 군복을 챙겨입었다. 야상이 눈에 밟혔는데 입지 않았다. 총을 들고 뛰어다닐 걸 생각하면 야상은 귀찮은 짐일 것 같았다. 일기예보도 그 전날 확인했는데 기억하지 못했다.

처음 가보는 길. 처음 타보는 버스. 방향은 다행히 맞았고 운전기사님도 나를 챙겨주시더라. 한두명은 꼭 늦는다면서. 다행히 9시 50분 도착. 10시를 넘기지 않아서 되돌려보내지는 않더라. 살았지.

춥고 혼자고 노래를 듣다가 총을 쏘고 점심을 먹었다. 비가 오다가 눈으로 바뀌는 것은 금방이었고, 잠시 쉬다가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추웠다. 훈련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추웠기에 훈련은 쉽게 끝냈다.

다시 돌아오는데 내가 아는 코스는 '아침에 왔던 코스'를 반대로 하는 것... 다른 예비군들이 가던 지하철역을 보고도.. 난 했던 대로 하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근데 반대로 타서 멀리 갔더랬지. 결국 지하철 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왔다.

올해가 마지막 훈련일 것이다. 올해가 지나면 더 이상 군복을 입고 훈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그런데도 아직까지 훈련장을 찾아가는 일이 낯설고 새로 배워야 했으며 돌아오는 길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들었던 노래는 죄다 슬픈 노래들. 그것도 음질이 좋지 않아 들으면서 기분이 더 좋지 않았다.
 
슬펐다. 오늘은 그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나는 항상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단지 오늘은 그걸 느낀 시간이 아닐까. 버스 창문 밖 풍경도 낯설고 주변에 들리는 이야기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난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있다. 항상 이러고 있지는 않았을까.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환승하고 갈아타고 줄을 섰다.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면서 맞는 길이겠지 하면서 걸어다녔다.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집에도 난 불을 켜기 위해서 더듬거리면서 여기에 스위치가 있겠거니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글을 쓰다가 조금 나아졌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