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비오는 대학로와 종교집회와 멋진 공연

 주말에는 전화기가 울리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깊게 자는 편인데, 그나마 적당한 시간에 전화기가 울려줘서 오늘 약속도 늦지 않았고 다른 일도 마칠 수 있었다.

 친척 어르신이 서울대 병원에 입원해 계시니, 음료수라도 한 박스 사 들고 문안이라도 하라는 부모님 연락. 저번 주에 바빠서 못 갔더니 이번 주에도 연락이 오셨다. 대학로에서 연극볼 약속이 있었으니 그 전에 들리면 되겠구나 싶었지. 퇴원을 아직까지 안하셨다니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건강한 집안이라 큰 병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그날따라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평소 나라면 집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을 날씨. 하지만 오늘은 할 일이 많지.

 서울대 병원을 들어가 본 것도 처음이었고 예전 혜화동에서 살 때도 그렇게 큰 병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예상 외로 큰 병원.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들어와서 찾아가는데 애를 먹었다. 산을 끼고 있는 건, 서울대의 특징인 듯.

 다행이 어르신의 상태는 좋았고, 그리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부모님께 보고. 그러면서 만나게 된 하나의 집회 현장.

 매년 이 맘때 즈음해서 특정 종교인들이 대학로에서 모임?을 가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인 줄은 몰랐다. 비오는 데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모습. 하지만 경제 살리기라니. 기복신앙이구나. 나도 제 인생 경제를 좀 살려주세요. 난 무교인데 누구한테 빌어야 할까? ㅎㅎ

 요즘 공연을 소개해주고 나에게 관극을 권하는 선배님이 계신데, 덕분에 좋은 공연을 자주 본다. 그 선배야 문화생활을 잘 하시는 분이시라 여기저기 많이 찾아가고 읽고 듣고 하시는 분이시니, 어느 작품이든지 무조건 ok. 내가 1순위는 아니겠지만, 자주 나에게까지 순번이 돌아와서 같이 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아, 칼 같이 공연비용을 나눠내고 1차는 내가, 2차는 선배가 하는 그런 만남이 되었다. 공연이 늦어서 오늘은 일찍 만나서 저녁과 커피와 대화를 먼저 가졌다.

 비오는 날 먹은 리조또니 스파게티는 맛있었고, 클래식이 흘러나오던 카페에서는 커피가 좋았다. 대화도 담배도 좋았고 말이지. 

 7시 10분 아르코 극장. 극단 백수광부의 '봄날' 

 연극반 1회 공연 작품이 이 봄날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왜 이 작품이 오늘 관극 작품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1987년 창단 공연이었으니 연극반도 벌써 22주년이구나. 이제는 사그러든 모습. 대학 방학은 항상 연극을 했었는데. ㅎㅎ

 사실 저 포스터는 너무 긍정적이다. 물론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참 이런 작품에도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이강백의 힘은 대단하지. 아버지 역을 맡은 오현경씨. TV손자병법으로 기억되는 분이시다. 커튼콜에서 수줍게 인사하는 모습도 좋았다. 환호성과 끊이지 않던 박수 소리에 배우들이 인사를 세번이나 했는데, 그 모습에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던지. 공연이 다른 게 아니구나. 이래서 내가 연극을 좋아하구나 하는 기분. 

 물론 대학 연극에서 배우를 하면서 늘 만족하는 연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커튼콜이 끝나고 박수를 받으면 후련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프로들의 커튼 콜에서 내가 얼마나 박수를 열심히 쳐주는 지 그 사람들은 알려나~ ㅎㅎ  

이건 관련 글.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04/h200904250346088431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