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줄 쓰고 엔터키 한번. A4 한 장이 기본



컴퓨터가 내 삶에 끼여 들지 못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와 함께였던 하교길, 돌아가면서 자동차 이름을 하나씩 대던 그때의 학교 이야기를 해볼까? 학교 근처 가깝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그날 밤 하루 종일 전부 읽어 내던 그 시절 날씨 이야기를 해볼까? 학교 서클활동, 친구와 함께 바둑알 따먹기를 하던 바둑반 선생님 이야기는?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면서 잠에 들던 시절이 지나가고, 내일 해야 할 업무에 대한 부담감과 늦게 한 빨래가 내일 마를지에 대한 고민 정도로 잠이 드는 시절이 찾아오면, 예전에 있었던 일이 꿈에 더 자주 나온다고 하던가? 그러고 보니, 친구들이 즐겁게 마을을 뛰어다니면서 얼음땡을 할 때, 나는 다 큰 얼굴로 거기에 끼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보는 꿈을 꾸었었다.

 

#1. 어느 여름 일인데, 동네 애들과 같이 조금 먼 수영장에 갔다 온 적이 있었다. 원래 야외 수영장에 물이 채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가보자가 된 것이었는데, 갔더니 아직 야외 수영장에는 물이 채워져 있지 않았었다. 그래서 결국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었지. 버스를 타고 돌아왔는지 걸어서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오는 길에 소나기가 크게 내려 비를 맞고 집에 돌아왔다.

 

기억은 일일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가 되는 모양인지, 가끔 기억나는 추억 속 장면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있다. 찬찬히 뜯어보면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이 4학년 때 찾아갔던 친구네 시골집에서 중학교 1학년 때 했던 자동차 이름 대기 놀이를 하고 있는 상황. 이 정도라면 원작의 설정을 무시했다고 팬들이 화낼 만도 하지만 팬이라고 해야 나 뿐이니문제 될 일은 아니군.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해서 그런지 오늘 따라 예전 생각이 더 잘 난다.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글을 쓰는 이 기분도 나쁘지는 않네. 이런 식이면 어린 시절 이야기를 계속 풀어 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블로그가 일기장이 되는 것도, ‘네 줄 쓰고 엔터키 한번. A4 한 장이 기본이라면 즐거운 글쓰기 연습이 될 것 같은데.

 

#2. 동네에 새로운 오락실이 생기고 친구들과 그 오락실에 매일 들락날락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오락실엔 주인 아저씨의 취향인지, 항상 흥겨운 리듬의 트롯이 스피커로 오락실 안에 울려 퍼졌다. 늘 그 노래를 들으면서 오락을 해서 그런지, 그 시절 즐겁게 했던 게임들을 떠올리면 같이 떠오르는 게, 김혜연의 서울.대전.대구.부산. “나는 그만 주저앉아 울고 말았네~ 찍고 찍고 찍고~”

 

네 줄 쓰고 엔터키 한번. A4 한 장이 기본이라는 이 규칙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말 오랫동안 지킬 수 있는 규칙이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야. 즐거운 일을 찾아야 했는데, 또 컴퓨터 앞에서 움직이지 못할까 그게 더 걱정이긴 하지만, 혹시 모르지. A4 한 장을 채우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싶어질지도?

 

원고지 10장에 독후감을 써오라는 숙제가 있었을 때, 제목, 부제목, 날짜, 학년 반 번호, 이름까지. 내가 변통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분량을 확보하고 만족하던 그 때가 기억이 난다. 벌써 한 장이군.